[프레스나인] BMS는 급성 골수성 백혈병(AML)을 적응증으로 하는 CC-90009라는 차세대 단백질 분해 기반 항암제를 개발한 바 있다. 이 약물은 GSPT1(eukaryotic peptide chain release factor G1) 단백질을 분해하여 암세포의 사멸을 유도하는 기전으로 작동한다.
GSPT1은 단백질 합성 과정에서 리보솜으로부터 폴리펩타이드를 방출하는 역할을 한다. 이 과정은 세포 성장과 증식에 필수적이다. 특히 빠르게 증식하는 암세포에서는 단백질 합성 속도가 매우 활발하기 때문에, GSPT1의 기능이 중단되면 세포 내 스트레스가 급증하면서 세포 사멸(apoptosis)로 이어질 수 있다. 정상 세포도 GSPT1을 필요로 하지만, 암세포는 GSPT1의 기능에 훨씬 더 의존적이기 때문에 정상 조직은 최소한의 영향을 받으면서 종양 세포에 치명타를 줄 것으로 기대됐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CC-90009는 기존 치료제에 반응하지 않던 환자군에서도 잠재적인 효능이 확인되면서 기대를 높였으나, 치료 과정에서 용량 의존적 독성, 특히 혈소판 감소(thrombocytopenia)와 같은 혈액학적 부작용이 나타났다. 다시 말해, 암세포뿐만 아니라 정상 세포도 영향을 받은 것이다. 치료 반응률도 일관되지 않았다. 일부 환자에서 완전 관해(CR) 또는 부분 관해(PR)가 관찰되긴 했지만, 전체적인 반응률은 낮았고 반응 지속 기간도 짧았다. 특히 기존 치료에 내성이 있던 환자군에서는 CC-90009만으로 안정적인 효과를 내기 어려운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BMS는 더욱 정밀하고 선택성이 높은 GSPT1 타깃 전략이 필요했고, 당연히 ADC 형태로 GSPT1 단백질 분해제를 투여하는 방향으로 전환해야 했던 것이다.
오름테라퓨틱은 BMS의 CC-90009와 같은 적응증(AML)에, 같은 타깃(GSPT1)을 쓰면서 약물을 전달하는 방식인 ‘모달리티(modality)’를 바꾸어 개발을 해왔다. 오름테라퓨틱은 BMS의 전략적 오류를 파악하고, ADC 형태의 GSPT1 단백질 분해제를 개발한 것으로 보인다. BMS가 전략적 방향 전환이 필요한 시점에 오름테라퓨틱이 보유한 ORM-6151이 임상 진입이 가능한 단계에 도달해 있었던 것이다. BMS도 동일 기전의 ADC를 자체적으로 개발할 수 있었겠지만, 최소 3년이 걸리는 전임상을 건너뛸 수 있다는 점이 기술이전을 선택하는 데 매우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을 것이다.
다시 말해, BMS가 ORM-6151을 선택한 것은 기술적 독창성 때문이라기보다, GSPT1이라는 타깃을 포기하기에는 이미 너무 많은 리소스를 투입했고, 대안을 찾아야 하는 시점에 오름테라퓨틱이 ‘적절한 해답’을 제시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더 현실적이다. BMS가 직접 개발했던 CC-90009와 적응증도 같고 타깃도 같은 약물을, 단지 다른 모달리티로 다시 사들이는 구조인 셈이다.
물론 오름의 ORM-6151은 분명히 '선택적 전달'이라는 측면에서 개선된 구조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는 약물의 근본적인 기전 자체를 바꾼 것이 아니라, 기존 분자에 "표적 안내 시스템"을 부착한 것이다. 기술적으로는 “벤치마킹”이라 표현할 수 있겠지만, 실제 산업계에서는 이러한 행위를 ‘후발주자의 전략적 카피’, 혹은 ‘실패한 전술의 리패키징’으로 보는 시각이 강하다. 특히 오름은 이 기술을 자체적으로 기획한 것이 아니라, 이미 시장에서 ‘이 타깃이 가능하다’는 것을 선행 기업이 임상 데이터를 통해 검증해준 이후에 설계했기 때문에, 순수한 발명이라 보기는 어렵다.
또한, 오름테라퓨틱이 개발한 ORM-6151이 과연 "기술적으로 혁신적인지"를 판단할 때, 사용된 링커가 어떤 기술에 기반했는지는 매우 중요한 단서가 된다. ORM-6151은 항체-약물 접합체(ADC)다. 이 형식의 약물에서 링커는 항체와 약물을 연결하는 중추적인 기술 요소다. 링커의 안정성과 방출 메커니즘은 약물의 약리작용, 체내 분포, 독성까지 전반에 걸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다시 말해, ADC에서 링커는 단순한 연결 고리가 아니라 성공 여부를 좌우하는 핵심 설계 변수다.
그런데 오름이 ORM-6151에 적용한 β-glucuronide 링커는 업계에서 이미 널리 사용되어 왔던 표준형 링커로 알려져 있다. 오름이 사용한 링커는 새로운 설계나 독자적 기술이 아니라, 기존 업계에서 안정성과 방출 메커니즘이 입증된 기술을 그대로 차용한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해, ORM-6151은 BMS가 개발하던 GSPT1 분해제를 이미 잘 알려진 링커로 항체에 붙인 ‘아이디어 상품’이라고 판단된다. 탁월한 기술이 집약된 혁신적인 신약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