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패권 시대 “따라가기만 해선 생존 불가”…과학기술정책 대전환 시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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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패권 시대 “따라가기만 해선 생존 불가”…과학기술정책 대전환 시급
  • 정재로 기자
  • 승인 2025.06.08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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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현학술원, '기술패권 시대, 흔들리지 않는 과학기술 국가 전략' 보고서 발간…“정권 아닌 국가의 지속 전략 필요”

[프레스나인] “기술이 안보이고, 과학이 주권이다.”

기술패권 경쟁이 치열해지는 시대, 한국의 과학기술정책이 여전히 ‘패스트 팔로워’ 전략에 머물러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이에 따라 기존의 ‘선택과 집중’ 방식에서 벗어나 장기적이고 지속 가능한 R&D 체계로의 전환이 시급하다는 주장이 나왔다.

최종현학술원(이사장 최태원 SK 회장)은 8일 '기술패권 시대, 흔들리지 않는 과학기술 국가 전략' 보고서를 발간하고, 기술주권 강화를 위한 과학기술정책 대전환을 촉구했다. 이 보고서는 지난 4월 개최된 과학기술 정책 포럼의 논의를 바탕으로 염한웅 POSTECH 교수, 이상엽 KAIST 교수, 이정동 서울대 교수 등 국내 대표 석학들이 참여해 집필했다.

보고서는 한국 과학기술정책의 근본적인 문제로 ‘선택과 집중’ 전략을 지목했다. 염한웅 POSTECH 교수는 “정부가 전략기술을 정하고 예산을 몰아주는 방식은 성과 중심주의에 기댄 구시대적 접근”이라며 “급변하는 기술환경에서는 오히려 이러한 전략이 혁신을 저해할 수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젊은 연구자들이 정부가 지정한 분야 외 주제를 연구하면 연구비조차 확보하기 어려운 현실”이라며 “정책 결정의 중심축을 민간과 연구 현장으로 이동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 보고서에서는 현재 R&D 전략이 기술의 다양성과 생태계를 저해하고 있다고 진단하며, ‘퍼스트 무버’로의 정책 전환 필요성을 제기했다.

보고서는 정권 교체 때마다 R&D 정책이 크게 흔들리는 문제도 지적했다. 대형 국책과제가 정권에 따라 폐기되거나 축소되는 일이 반복되면서, 현장 연구자들이 지속성과 예측 가능성을 확보하기 어려운 구조라는 것이다.

김유석 최종현학술원 대표는 “대통령직인수위 없이 정부가 출범하면, 중장기 과제가 공론화 기회를 충분히 확보하기 어렵다”며 “정파를 초월한 독립적 시각에서 정책이 수립돼야 한다”고 말했다.

염 교수는 “한국의 기초연구 투자 비중은 전체 R&D 예산의 18%로, 독일(27%)·프랑스(26%)·미국(22%)에 비해 현저히 낮다”며 “기초 체력이 약화된 상태에선 장기 경쟁력을 확보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보고서의 핵심 화두는 ‘기술주권’이다. 이상엽 KAIST 특훈교수는 “우리 기술이 아니면 대체할 수 없는 영역, 즉 NFTIPS(Non-Fungible Technology, Industry, Product, Service)를 확보해야 기술주권을 지킬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정동 서울대 교수는 이를 위한 ‘워룸(War Room)’형 의사결정체제를 제안했다. 그는 “과학기술은 외교·안보·산업이 얽힌 복합 전략의 영역”이라며 “대통령 직속 워룸을 통해 부처 간 정보 통합과 실시간 대응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인재 유입과 정착을 위한 국가 차원의 생태계 재설계를 주문했다. 이상엽 교수는 “우수 인재가 한국을 연구와 삶의 터전으로 삼도록 유도해야 한다”며, 비자 제도·정착 지원·연구환경 개선 등 종합적 인재전략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긴 학업 기간과 높은 연구강도에도 불구하고 이공계 직업이 충분한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다”며 “과학기술인이 사회적 존중을 받고, 안정된 커리어를 보장받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보고서 말미에는 헌법 제127조의 과학기술 조항이 경제성장 수단에 국한돼 있다는 문제의식도 담겼다. 저자들은 “과학기술의 가치를 그 자체로 인정하고, 필요하다면 헌법 개정도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종현학술원 『기술패권 시대, 흔들리지 않는 과학기술 국가 전략』 과학기슬 정책 보고서 표지 이미지. 사진/최종현학술원
최종현학술원 『기술패권 시대, 흔들리지 않는 과학기술 국가 전략』 과학기슬 정책 보고서 표지 이미지. 사진/최종현학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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