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충실의무 확대, 상법 근간까지 훼손해
상법 개정과 관계없이 배임죄 지양해야
[프레스나인] 경제계가 이사의 충실 의무를 회사에서 주주로 확대하는 상법 개정 움직임에 우려를 표명했다. 상법 개정안이 과도한 사법 리스크를 불러와 결국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증시 저평가)가 심화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한국경제인협회는 15일 FKI타워 콘퍼런스센터에서 회사법 전문가들을 초청해 '이사 충실의무 확대,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주제로 좌담회를 개최해 이같이 밝혔다. 류진 한경협 회장은 "일부에서는 상법을 개정하면 기업 지배구조가 개선되고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하지만 상법을 개정하면 과도한 사법 리스크로 기업인들은 신산업 진출을 위한 투자나 인수합병을 주저하게 되고 결국 기업 가치를 훼손시켜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심화시킬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상법 개정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측에서는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으로 기업 지배구조를 꼬집어 이사 충실의무를 확대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반면, 강원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한국 특유의 법·제도의 틀 내에서 주주나 투자자들이 내린 합리적 선택의 결과가 코리아 디스카운트라고 설명했다. 강 교수는 "높은 상속세와 법인세 등으로 회사가 번 돈을 주주가 가져가지 못한다는 것을 시장이 알기 때문에 미래 주가 예측에 큰 폭의 할인이 발생한다"고 강조했다.
또, 이사 충실의무 확대가 상법의 근간을 훼손시킨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곽관훈 한국경제법학회 회장은 일본을 예시로 들어 이사에게 광범위하고 추상적인 의무를 부과하는 것의 문제점을 들었다. 일본은 1970년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일본 상법에 일반규정으로 도입하는 것을 논의했고, 2014년에는 모회사 이사의 자회사에 대한 감독책임을 명문화하는 방안을 검토했다. 하지만 두 건 모두 이사의 책임을 지나치게 확장하는 데 따른 책임한도 설정 문제를 불러와서 결국 무산됐다.
곽 회장은 “한국 회사법은 회사와 이사 간 위임계약 관계를 준용하기 때문에 이들 두 계약 당사자 사이에서만 의무가 발생한다”며 “이런 상황에서 이사의 충실의무를 주주로 확대할 경우 위임계약의 기본 법리와 모순될 뿐만 아니라 상법 근간까지 훼손시킨다”고 말했다. 또, 곽 회장은 “이번에 상법이 개정돼 이사 충실의무가 대폭 확장될 경우 이사의 행위규범이 오히려 불분명해지는 부작용이 초래되고 결국 이사의 책임한도를 어디까지로 설정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란이 뒤따를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밖에도 권종호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사의 충실의의무 확대와 함께 논의되고 있는 배임죄에 대해서도 상법 개정과 관계없이 지양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앞서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이사 충실의무 확대에 재계가 반발하자 배임죄 폐지라는 당근책을 언급한 바 있다.
현재는 이사의 위법한 직무 수행에 대해 상법상 특별배임이 아닌 형법의 업무상 배임을 적용한다. 이에 권 교수는 "이사의 경영판단 행위에 대해 현재와 같이 형사책임을 물을 경우 잘못에 비해 처벌이 클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며 "범죄와 형벌 사이에 적정한 균형을 이뤄야 한다는 죄형균형원칙에도 반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