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C 골수 내 조혈모세포까지 도달하기 쉽지 않아
뛰어난 링커 기술 없으면 골수 도달전 페이로드 조기 방출될 듯
[프레스나인] 오름테라퓨틱이 Vertex와 체결한 계약은 일반적인 기술이전 계약과 다르다. Vertex는 오름테라퓨틱의 약물이 자사의 유전자 치료제 캐스제비(Casgevy)의 전처리제로 사용 가능한지를 확인하기 위한 연구를 해보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자체적인 링커 기술이 뛰어나지 않은 오름테라퓨틱의 ADC를 Casgevy의 전처리제로 사용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고 판단된다. 타사의 ADC 역시 Casgevy 전처리제로 사용되기에는 쉽지 않아 보인다.
2023년 FDA 승인을 받은 Casgevy는 CRISPR/Cas9 유전자 가위 기술을 이용해 개발된 세계 최초의 유전자 편집 치료제로, 겸상적혈구병(Sickle Cell Disease) 치료를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이 치료법은 환자의 조혈모세포를 채취한 뒤 체외에서 CRISPR 기술로 특정 유전자를 편집하고, 이를 다시 환자에게 주입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하지만 전체 치료 과정이 매우 복잡하고, 약 30억 원에 달하는 치료 비용도 접근성을 크게 떨어뜨린다. 또한, 편집된 조혈모세포를 다시 주입하기 전에 기존의 편집되지 않은 세포들을 제거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독성이 강한 항암제를 통한 전처리가 요구되며, 입원과 회복 기간이 길다. Vertex가 CRISPR Therapeutics와 공동 개발한 이 치료제는 과학적 상징성만큼이나 상업적 기대치도 높았던 제품이었다. Vertex는 이 프로그램에 막대한 R&D 자금을 투입했고, 미국과 유럽에서 판매 허가도 획득했지만, 매출 실적은 시장의 기대에 크게 미치지 못하고 있다.
Casgevy의 2025년 1분기 매출은 고작 1,420만 달러에 불과하다. 실제로는 약 7명의 환자만이 Casgevy 치료를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상업적으로 실패한 치료제로 평가될 수 있지만, Vertex는 아직 이 치료제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동안 투자한 천문학적인 비용과 상징성 때문에 아직 실패를 인정하고 싶지 않은 듯하다. 이에 따라 전처리 과정에서 독성이 강한 항암제를 사용하지 않고, ADC를 사용해 Casgevy의 접근성을 높이겠다는 전략을 세운 것으로 보인다.
전처리라는 단계는, 쉽게 말해 유전자 편집을 거친 새 세포를 넣기 전에 기존의 비정상 세포들을 "자리 비워주기" 위해 시행되는 과정이다. 이 전처리에 항암 화학요법이 동원되며, 문제는 이 과정에 사용되는 약물이 암 치료에 쓰일 정도로 독성이 강해 부작용이 크다는 점이다. 이런 부담스러운 전처리 과정을 해결하기 위해 Vertex는 미국의 ADC 전문 기업 이뮤노젠(ImmunoGen)과 협력 계약을 체결했다. 이 계약을 통해 Vertex는 ImmunoGen의 ADC 기술을 활용해 전처리 독성을 낮추는 시도를 하고 있으며, 이후 오름테라퓨틱과도 유사한 계약을 체결했다. 이는 Vertex가 다양한 옵션을 확보해 어떻게든 Casgevy를 살려보겠다는 전략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ADC 기술을 활용해 골수까지 약물을 안정적으로 전달하는 것은 기술적으로 매우 어려운 과제다. 혈류를 통해 전달되는 ADC가 골수 내 조혈모세포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여러 생물학적 장벽을 극복해야 하며, 이는 현재 기술 수준으로는 쉽지 않다. 특히 자체적인 링커 기술이 없는 오름테라퓨틱의 경우, 페이로드(payload)를 떨어뜨리지 않고 골수 내 조혈모세포까지 성공적으로 전달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판단된다.
저분자 항암제가 아닌 항체-약물 접합체(ADC)가 골수까지 도달해 안정적으로 작용하기는 생각보다 훨씬 어렵다. ADC는 일반적으로 혈류를 통해 전신에 퍼지며, 대부분의 약물 전달은 혈관이 풍부하고 조직 접근성이 좋은 장기에서 이루어진다. 그러나 골수는 단단한 뼈 안에 위치하고 있어 물리적으로 접근이 어렵고, 내부 미세환경이 복잡하며, 혈액-골수 장벽이라는 생리적 장벽까지 존재해 외부에서 투여된 약물이 제대로 도달하기 힘든 구조다.
더욱이 골수 내에는 다양한 비표적 세포와 면역세포들이 밀집해 있어, 약물이 그 사이에서 분해되거나 손실될 가능성도 크다. 따라서 ADC가 골수 내 조혈모세포에 정확히 도달해 작용하기 위해서는 항체가 표적 세포를 정밀하게 인식해야 하고, 링커는 체내에서 너무 빨리 끊어지지 않아야 하며, 페이로드는 세포 내에서만 정확히 활성화되어야 한다. 이 세 조건을 모두 만족시키는 것은 현재의 기술 수준에서도 결코 단순한 일이 아니다. 특히 독자적인 링커 기술 없이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게다가 골수에서 표적 단백질이 낮은 수준으로 발현되는 경우, ADC의 효율은 더욱 떨어진다. 이는 단순한 약물 전달 문제를 넘어, ADC 자체가 골수라는 조직 환경에서 생물학적으로 얼마나 효과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지를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할 필요성을 제기한다. 즉, ADC를 골수 표적 전처리제로 활용하는 전략은 개념적으로는 가능하지만, 실제 임상에 구현되기 위해서는 상당한 기술적 허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만약 전처리가 충분히 되지 않은 상태에서 유전자 편집된 세포를 주입하게 되면, 30억 원에 달하는 고가 치료가 처음부터 실패로 끝날 위험도 존재한다. 실제로 오름의 전임상 프로그램인 ORM-5029의 실패는 이 회사가 자체 링커 기술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해석된다. 골수까지 페이로드를 안정적으로 운반해야 하는 치료 전략에서, 링커의 안정성이 의심된다면 그 약물은 사용할 수 없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Vertex가 오름테라퓨틱과 체결한 딜은 기술적인 가치보다는 Casgevy를 포기하지 않기 위한 절박한 선택에 가깝다. 만약 기적적으로 ADC가 전처리에 사용되게 된다 하더라도, 링커 기술이 뛰어난 이뮤노젠의 ADC가 선택될 가능성이 더 높아 보인다.
오름테라퓨틱의 Vertex 딜은 가치 있다고 보기 어렵다.
